본문 바로가기

여행정보

세계 순례길 추천 8곳|산티아고부터 일본 구마노고도까지,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길

여행에서는 보통 목적지가 중요합니다. 어디를 보고, 무엇을 먹고, 어떤 사진을 남길지가 여행의 중심이 되죠.

그런데 세상에는 도착하는 곳보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더 중요한 여행도 있습니다.

숲과 산을 넘고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묵으며 며칠씩 같은 방향으로 걷는 순례길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된 길이 많지만, 지금은 꼭 신앙이 없어도 걷기 여행과 트레킹, 자신만의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뿐 아니라 일본의 깊은 삼나무 숲, 노르웨이 피오르, 이탈리아 시골마을, 페루 안데스 산맥까지 세계 곳곳에 매력적인 순례길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휴가 며칠로 도전할 수 있는 구간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순례길 8곳을 골라봤습니다.


1.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음 순례여행을 떠난다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

 

추천 구간: 사리아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거리: 약 100km 이상
권장 일정: 약 5~7일
추천 시기: 봄·초여름·초가을

세계 순례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역시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곳곳에서 출발해 최종적으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향합니다.

가장 유명한 프랑스길 전체를 걸으면 약 800km에 가까운 장거리 여행이 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북부 스페인의 사리아(Sarria)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00km가 조금 넘는 길을 걸으면 보통 일주일 정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와 카페, 식당 등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첫 장거리 걷기 여행으로 도전하기 좋은 코스입니다.

공식 순례증명서인 콤포스텔라를 받고 싶다면 도보 기준 마지막 100km 이상을 걸어야 하고, 자전거 순례자는 200km 이상이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순례길을 처음 경험하고 싶다면 가장 무난한 선택입니다.


2. 일본 구마노고도|삼나무 숲을 걷고 온천에 들어가는 길

구마노고도 트레킹

추천 구간: 다키지리오지 → 구마노혼구타이샤
거리: 약 38km
권장 일정: 3~4일
추천 시기: 봄·가을

한국에서 접근하기 좋은 순례길을 찾는다면 일본 와카야마현 구마노고도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기이반도의 깊은 산속을 연결하는 오래된 순례길로, 천 년 넘게 일본의 황족과 귀족부터 일반인까지 걸었던 길입니다.

현재는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길은 나카헤치 루트입니다.

기이타나베에서 버스를 타고 약 40분 이동한 뒤 다키지리오지에서 걷기 시작해 구마노혼구타이샤까지 이어지는 대표 구간이 약 38km입니다.

거리만 보면 짧아 보이지만 평지가 아니라 산길을 계속 오르내리기 때문에 체감 난이도는 제법 높습니다.

대신 하루의 걷기가 끝나면 유노미네 온천이나 가와유 온천 같은 온천마을에서 쉬어갈 수 있다는 것이 구마노고도의 큰 매력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구마노고도를 모두 일정 기준 이상 완주하면 듀얼 필그림(Dual Pilgrim)으로 등록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 여행과 트레킹, 료칸과 온천을 모두 좋아한다면 특히 추천하고 싶은 길입니다.

 


3. 이탈리아 비아 프란치제나|매일 파스타를 먹으며 로마까지

비아 프란치제나

 

추천 구간: 비테르보 → 로마
거리: 약 110km
권장 일정: 약 5~7일

추천 시기: 약 4~6월, 9~10월

산티아고가 스페인을 대표한다면 이탈리아에는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가 있습니다.

영국 캔터베리에서 시작해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로마까지 이어지는 유럽의 오래된 순례길입니다.

전 구간을 걷는다면 수개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행자라면 마지막 이탈리아 구간만 골라 걷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특히 추천할 만한 코스가 비테르보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약 110km 구간입니다.

중세 마을과 라치오 지방의 구릉지대, 올리브밭과 오래된 교회를 지나 마지막에는 로마로 들어갑니다.

무엇보다 이 길의 장점은 음식입니다.

하루 종일 걷고 작은 이탈리아 마을에 도착해 파스타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는 경험은 일반적인 도시여행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100km 이상을 도보로 순례했다면 조건을 충족해 로마에서 순례 인증서인 테스티모니움(Testimonium)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트레킹도 하고 싶지만 맛있는 음식과 유럽 소도시 여행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여행자에게 잘 맞습니다.


4. 노르웨이 세인트 올라브 웨이|피오르를 따라 걷는 북유럽 순례길

 

노르웨이 세인트 올라브 웨이

 

추천 구간: 레방에르 → 타우트라 → 트론헤임
거리: 약 57km
권장 일정: 약 4일
추천 시기: 5~9월

조금 특별한 순례길을 찾는다면 노르웨이의 세인트 올라브 웨이(St. Olav Ways)가 있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트론헤임의 니다로스 대성당입니다.

노르웨이에 기독교를 확산시킨 올라브 2세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중세부터 북유럽의 중요한 순례지였습니다.

여러 길 가운데 여행자가 도전하기 좋은 코스가 레방에르에서 타우트라까지 약 57km를 걷는 4일 코스입니다.

숲만 걷는 트레킹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피오르를 바라보며 걷다가 작은 농촌마을과 오래된 교회, 호수와 숲을 지나고 타우트라섬에 도착합니다.

계절에 따라 배를 이용해 트론헤임으로 이동한 뒤 마지막으로 니다로스 대성당까지 걸을 수도 있습니다.

북유럽답게 날씨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방수 재킷과 비에 대비한 장비는 필수입니다.

사람 많은 유명 순례길보다 조용한 자연 속을 걷고 싶다면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5. 영국 필그림스 웨이|중세 영국을 따라 캔터베리까지

캔터베리 대성당

 

추천 구간: 로체스터 → 캔터베리
거리: 약 66km
권장 일정: 약 4~5일

추천 시기: 약 4월~10월

영국에도 오래된 순례길이 있습니다.

목적지는 영국을 대표하는 종교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캔터베리 대성당입니다.

1170년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이 대성당에서 살해된 뒤 그의 무덤을 찾아오는 순례자가 늘어나면서 캔터베리는 유럽의 중요한 순례지가 됐습니다.

필그림스 웨이는 여러 출발점과 구간으로 나뉘는데, 여행자가 비교적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가 로체스터에서 캔터베리까지 이어지는 약 66km 구간입니다.

높은 산을 넘는 트레킹보다는 영국 특유의 초원과 시골길, 작은 마을과 오래된 교회를 지나가는 걷기 여행에 가깝습니다.

런던 여행과 연결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런던에서 로체스터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며칠간 걸어 캔터베리에 도착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일정도 만들기 좋습니다.

힘든 산악 트레킹보다 역사와 영국 시골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걷고 싶은 여행자에게 추천합니다.


6. 페루 라스 우아링가스|해발 4,000m 가까이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호수

 

추천 구간: 살랄라 → 라구나 네그라 → 라구나 심베
거리: 약 8.5km
추천 시기: 건기인 5~12월

페루 여행이라고 하면 마추픽추와 쿠스코부터 생각하기 쉽지만 북서부 안데스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장소가 있습니다.

라스 우아링가스(Las Huaringas)입니다.

피우라 지역의 높은 산지에 흩어진 신성한 호수들로,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에게 치유와 의식을 위한 장소로 여겨져 왔습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아니며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문화경관입니다.

대표적으로 찾는 곳은 라구나 네그라와 라구나 심베입니다.

특히 라구나 네그라는 해발 약 4,000m에 가까운 고지대에 있어 거리는 짧아도 평지 트레킹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산지대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라면 가이드와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고 충분한 고도 적응도 필요합니다.

접근성 역시 쉽지 않습니다.

리마에서 피우라로 이동한 뒤 다시 우앙카밤바를 거쳐 산악지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일반적인 페루 여행에서는 보기 힘든 안데스의 풍경과 문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보다 정말 낯선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7.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카미노|포도밭과 바다가 이어지는 순례길

케이프 카미노 자전거 여행

 

지역: 웨스턴케이프 일대
추천 시기: 8~10월

순례길이라고 하면 오래된 성당과 산길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케이프 카미노(Cape Camino)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의 농장과 포도밭, 작은 마을과 해안선을 연결하는 현대적인 순례여행입니다.

특히 8~9월에는 웨스턴케이프의 야생화 시즌과 겹쳐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케이프 카미노는 한 가지 고정된 코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과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구간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와인 산지와 농촌을 걷는 코스부터 야생적인 서해안, 케이프반도의 산과 바다를 만나는 구간까지 분위기도 크게 달라집니다.

장거리 걷기가 처음이라면 짧은 일정부터 선택할 수 있고 숙소나 식사, 짐 운송 등이 포함된 형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처럼 수백 년 된 전통 순례길과는 다르지만 남아공의 자연과 지역 공동체를 천천히 경험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확실합니다.

와인과 대자연, 걷기 여행을 한 번에 즐기고 싶다면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8. 미국 캘리포니아 미션 트레일|캘리포니아 역사를 따라 걷는 길

캘리포니아 미션 산루이스 레이

 

추천 구간: 샌디에이고 → 오션사이드
거리: 약 70km
권장 일정: 약 4일
추천 시기: 가을·초봄

미국에도 순례길이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캘리포니아에는 18~19세기에 세워진 21개의 스페인 미션이 샌디에이고에서 소노마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이 역사적 장소들을 연결하는 것이 캘리포니아 미션 트레일입니다.

전체를 여행하면 엄청난 장거리 코스가 되지만 짧게 경험하고 싶다면 샌디에이고의 미션 산디에이고 데 알칼라에서 오션사이드의 미션 산루이스 레이까지 이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출발점인 미션 산디에이고 데 알칼라는 1769년 세워진 캘리포니아 최초의 프란치스코회 미션입니다.

목적지인 미션 산루이스 레이는 규모가 커 'King of the Missions'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길은 단순히 낭만적인 역사여행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확대와 원주민 역사도 함께 얽혀 있기 때문에 각 미션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여행하면 훨씬 의미가 깊어집니다.

미국 서부여행에서 도시와 국립공원 이외의 색다른 테마를 찾는다면 흥미로운 코스입니다.


종교가 없어도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유명 순례길을 걷는 사람 모두가 종교적인 목적으로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트레킹을 위해 걷고, 누군가는 휴식이 필요해 떠나고, 또 누군가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얻기 위해 걷습니다.

일반적인 여행과 가장 다른 점은 매일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단순해진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고 걷습니다.

몇 시간 뒤 작은 마을에 도착해 밥을 먹고 쉬었다가 다음 날 다시 걷습니다.

볼거리를 최대한 많이 넣어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관광지를 빠르게 이동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쩌면 순례길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멋진 목적지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해도 되는 며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순례길을 걷는다면 어디가 좋을까?

처음이라면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 가장 유명하고 여행 인프라가 좋은 곳: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 한국에서 접근하기 좋은 곳: 일본 구마노고도
  • 음식과 유럽 소도시 여행까지 즐기고 싶은 경우: 이탈리아 비아 프란치제나
  • 조용한 자연과 피오르를 걷고 싶은 경우: 노르웨이 세인트 올라브 웨이
  • 산악 트레킹 부담이 적은 길: 영국 필그림스 웨이
  • 신비로운 고산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경우: 페루 라스 우아링가스
  • 와인과 해안 풍경을 좋아하는 경우: 남아공 케이프 카미노
  • 역사를 따라 걷는 색다른 미국 여행: 캘리포니아 미션 트레일

처음부터 몇백 킬로미터를 걷겠다고 계획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3박 4일이나 일주일 정도의 짧은 구간부터 경험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걷는 여행이 자신과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 산티아고 800km나 비아 프란치제나 같은 진짜 장거리 여행에 도전해도 늦지 않습니다.


순례여행 전 꼭 확인해야 할 것

장거리 걷기 여행은 일반 관광여행보다 준비할 것이 조금 다릅니다.

  •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실제로 테스트해보기
  • 새 신발보다 충분히 길들인 트레킹화 사용하기
  • 배낭 무게 최소화하기
  • 비옷과 방수 커버 준비하기
  • 숙박시설이 적은 구간은 미리 예약하기
  • 순례 인증을 원한다면 출발 전에 크레덴셜과 스탬프 규정 확인하기
  • 고산지대는 고도와 기후를 반드시 확인하기
  • 계절에 따라 교통편과 선박 운항 여부 확인하기
  • 출발 직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산길 폐쇄와 우회구간 확인하기

특히 순례길은 자연재해나 공사, 폭우로 일부 구간이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오래된 블로그 지도만 믿기보다는 출발 직전에 공식 루트 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걷고 나면 여행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세계에는 유명 관광지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자신의 두 발로 이동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여행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지나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길도 좋고, 일본의 축축한 삼나무 숲을 걷다가 온천에 몸을 담그는 여행도 좋습니다.

노르웨이 피오르를 바라보며 걷거나 이탈리아 시골길 끝에서 파스타 한 접시를 먹는 여행도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평소 여행에서 조금 벗어나 보고 싶다면 다음 휴가에는 목적지를 하나 더 추가하기보다 그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